갈 2;1,2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진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다.
"십사 면이 지나서, 나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이번에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려갔다.
나는 어떤 계시를 받고 가서. 지도자로 존경받는 사람들과 은밀히 만나서,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내가 설교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전하였다. 나는 내가 달리고 있지 않았고 내 경주가 헛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1,2절은 바울의 사역에서 또 다른 중요한 순간을 묘사한다. 그는 개종한 지 14년 후에 바나바와 디도와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그는 방문 동안.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사적으로 만났다.
그는 이방 사람들 사이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이번 방문은 몇 가지 이유로 중요했다. 첫째, 초기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단결과 일관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의 승인을 구함으로써 바울은 더 넓은 기독교 메시지에 대한 헌신과 교회의 확립된 틀 안에서
일하고자 하는 열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사도들로부터 지도를 받고자 하는 바울의 의지는 사역에서 책임감과 감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울은 자신의 권리로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지도자였지만, 다른 사람들과 상의하고 자신의 메시지가 교회의 더 넓은
가르침과 일치하도록 하는 것의 가치를 인식했다.
도기 기독교 공동체와 사역에서 협동과 책임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복음 메시지에 대한 바울의 헌신과 교회의 확립된 틀안에서 일하려는 의지를 강조한다.
갈 2:3~5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나와 함께 있던 디도가 그리스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강요받지는 않았다. 이 문제는 몇몇 거짓 신자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염탐하고 우리를 종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안에 잠입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분은 복음의 진리를 지키게 되었다"
3~5절은 외부 관습과 전통에 순응하라는 반대와 압력 속에서도 복음의 진리 속에서 굳건히 서 있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기독교 공동체에 침투하여 와해시키려는 거짓 교사들의 위험성과 그들의 가르침을 확인하고 저항 하는 데 있어서
경계와 분별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디도가 그리스인리고 할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샬렘을 방문하는 동안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유대인 신자들에게 할례는 중요한 관습이었고, 일부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완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방인 신자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이러한 논란은 아마도 그들의 활동을 염탐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전복시키기 위해 기독교 공동체에 잠입한 거짓 신자들의 존재에 의해 촉발되었을 것이다.
이 개인들은 아마도 기독교 공동체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함께 오는 자유를 허용하기보다는 유대인의 법과 관습
아래로 되돌리려는 열망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그들의 가르침이 복음의 진리에 어긋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이 거짓된 선생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의 믿음을 굳게 지켰고, 유대인 관습에 순응하라는 압력에 저항함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구원의 진정한 메시지를 보존할 수 있었다.
갈2; 6~8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그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나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하나님께서는 편애를 나타내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내가 전하는 말씀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베드로가 할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간 것처럼 내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겼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베드로가 할례를 받은 사람들의 사도로 일하던 하나님이 이방 사람들의 사도로 나에게도 일하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메시지를 받았으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자신의 메시지나 권위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이는 기독교 공동체에 예수의 처음제자가 아닌 바울보다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더 큰 권위를 갖고 있고 더 신뢰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바울은 자신의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도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주장에 반박한다.
그는 또한 베드로가 할례를 받은 사람들(유대인 신자들)의 사도였고, 바울은 이방인들(유대인이 아닌 신자들)의
사도였으며, 둘 다 똑같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위임받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즐, 복음은 특정 집단이나 지리적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조사이안 사회적 지위와 같은 외부적인 요인에 기초하여 한 사람이나 집단을 다른 사람보다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각 개인에게 주신 고유한 소명과 선물을 인식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갈 2;9,10 또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알고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오른손을 주었다.
그들은 우리가 이방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고 동의했고, 할례를 받은 사람들에게도 가야 한다고 동의했다.
그들이 요청한 것은 내가 줄곧 간절히 원했던 바로 그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 기억하라는 것뿐이었다."
바울은 초기 기독교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졌던 야고보와 베드로, 요한이 지지해 주었다고 언급한다.
이는 바울의 메시지와 사역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후원을 받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 것이어서 의미가 컸다.
바울은 자신과 바나바가 이방인들에게 설교하도록 위임받은 반면, 다른 사도들은 할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설교하는데
집중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들의 다른 초점 영역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복음 메시지를 전파하고 각자의 소명을 이행하기 위한 그들의 헌신에 단결했다.
그리고 다른 사도들이 그와 바나바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기억하도록 부탁하였다. 이것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신약성경 전체에 걸쳐 중요한 주제이다.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기독교 삶의 필수적인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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