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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3; 1~7절 -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호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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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어리석은 갈라디아인들이여!  누가 너희를 꾀었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공개적으로 너희 눈앞에서였다."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힘과 의의에 대한 명백하고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증거는 단지 그들이 간접적으로 들은 것이거나 믿음을 떠맡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그들의 눈으로

본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이 왜 이 증거를 버리고 그들이 원래 받았던 메시지와 모순되는 잘못된 가르침에 속아 넘어갔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어리석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노에토이는 돌이킬 수 없는 죄에 대해 책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죄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질책하는 것이다.

1절과 3절에서 두 번에 걸쳐 사용되는 이 단어는 매우 도전적이고 통렬한 어투로 진술되고 있다.

바울은 앞으로 전개될 결론에 대하여 보다 준엄하고 냉정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사람들을 걱정하고 그들이 참된 복음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좌절감을 강력하고 감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독교의 근본적 진리를 기억하고 사람들을 구원의 길에서 빗나가게 할 수 있는 잘못된 가르침을 거부하라는 주문이다

 

갈 3;2,3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이것만 물어볼게, 너는 율법을 행하여 성령을 받았느냐 아니면 믿음으로 들었느냐? 너는 그렇게 어리석냐? 성령에 의해 시작된 당신은 이제 육체로 마치려고 하느냐"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율법으로 성령을 받았는지 믿음으로 들었는지 묻는다. 이 질문은 그들에게 구원의 근원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이 유대인의 율법을 따르거나 그들 자신의 노력으로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님이자 구원자로 믿음으로써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나 율법 준수에 의존하기보다는 구원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3절에서 바울은 더 나아가 믿음을 버리고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갈라디아인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그들이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그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부른다.

, 바울은 율법주의에 반대하며 구원의 진정한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기억하라고 한다.

바울은 오직 성경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의 업적이나 율법의 준수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갈 3; 4~6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정말 헛된 일이었다면, 그렇게 많은 일을 헛되이 겪었느냐? 너희에게 영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는 자가 율법으로 행하겠느냐? 아니면 믿음으로 들으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냐?"

 

바울은 갈라디아서 사람들에게 헛되이 많은 괴로움을 받았는지 묻는다.

그들이 기독교인으로서 겪은 박해와 고난은 이제 진정한 복음을 버린다면 무의미함을 얘기한다.

그리고 믿음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한다.

그는 성령과 기적은 율법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듣는 것에 의해 공급됨을 상기시킨다.

즉 성령의 능력과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선물이지 유대인의 율법을 따른 것이 아니다.

바울은 믿음의 모델로서 아브라함을 얘기한다.

그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고,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음을 상기시킵니다.

이는 창세기 156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낳겠다고 약속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그의 믿음을 의로 삼았다는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고 의롭게 되는 수단이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이 예를 사용하고 있다.

 

즉, 구원의 수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과 율법주의와 일에 기반한 의로 회귀할 위험성을 강력하게

상기시켜 주는 책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의 감정과 그들의 경험, 아브라함의 본보기를 들어 그의 메시지를 강화하고 믿음만으로 진정한

구원의 복음에 충실할 것을 촉구한다.

 

갈 3;7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그러므로 너희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아야 한다."

 

바울은 구원의 수단으로써 믿음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고, 아브라함을 예로 든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진정한 자식들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유대 문화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의 일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아브라함의 육체적인 후손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일부로 간주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믿음이 사람을 아브라함의 진정한 자녀로 만든다. 고 얘기함으로써 바울은 이방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완전한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유대의 법과 관습을 따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던 유대인들에게 도전하고 있다.

바울은 이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사람을 아브라함의 진정한 자녀로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

그리고 육체적 혈통보다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바울은 구원의 본질에 대해서도 보다 넓은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구원은 자신의 민족이나 조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민족 정체성과 법에 대한 복종을 크게 강조했던 당시의 유대인 신앙에서 급진적으로 벗어난 것이다.

 

즉, 구원의 본질과 육체적 혈통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에 대한 강력한 진술이다.

아브라함의 예를 사용함으로써 바울은 사람을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로 만드는 것은 조상이나 율법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 신학과 구원에 대한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사상이다.